배고픔과 목마름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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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민목사 댓글 1건 조회 14,050회 작성일 16-06-09 12:19본문
예전에 이런 말을 들었던 기억이 있는데요. 여러분! 슬픔 중에 가장 큰 슬픔이 무슨 슬픔인지 아십니까? 바로 ‘배고픔에서 오는 슬픔’이라고 합니다. 배가 고플 때의 서러움을 아시나요? 제가 대학을 다닐 때에 제주에서 서울로 올라가서, 말 그래도 유학을 하게 되었는데요. 방송에 어울리지 않는 말이지만 이런 말도 있지 않습니까? ‘집 떠나면 개고생이다!’ 고향과 집을 떠나 지내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특히나 힘든 것은 배고픈 것이었습니다. 한창 에너지가 많이 소비될 나이니까요. 학교 식당에서 밥을 먹고 돌아서면 바로 소화가 되어 버리는 것이지요. 제 기억으로는 가장 배고픔을 느꼈던 시기가 그 때였고, 가장 많이 먹었을 때가 그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제 기억으로 가장 많이 먹었던 기억이 일반 라지 싸이즈 보다 더 큰 슈퍼 사이즈 피자 한 판을 혼자 먹은 적도 있습니다. 그 만큼 배가 고팠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그럴까요? ‘배고픔’은 인간 생존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라는 말이 이해가 됩니다.
하지만, ‘배고픔’보다 더 큰 고통이 있습니다. 그게 뭘까요? ‘목마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실제의 예로, 사람이 며칠 동안은 굶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계속 물을 마시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요? 큰일 납니다. 가는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전쟁터에서 너무나 목이 타는데 수통에 먹을 식수가 없다면 참전한 군인들은 자신의 소변을 받아 마신다고 합니다. 평시에는 상상도 못할 일이지요. 그러나 갈증이 극도에 달하게 되면 이런 심각한 상황이 충분히 벌어질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팔복의 말씀을 통해서 희한한 말씀을 주십니다.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굶주리고 갈증이 나면 괴롭다고 해야, 힘들다고 해야 말이 될 것 같은데 복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이게 말이 됩니까? 이것도 역시 모순입니다. 그래도 다행히 그 앞에 ‘의에’라는 말이 있어서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팔복의 말씀이 다 그렇듯이 이것은 육신의 차원이 아니라 영적인 차원에서 말씀하신 것이지요.
특별히 말씀속에서 말하는 주리고 목말라 한다는 말은 절대적 궁핍의 상태에서 느끼는 고통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제국의 지배 하에서 피지배계층으로 살아가던 사람들이었는데, 참으로 주리고 목마른 고통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지 않았겠습니까? 그런 고통 가운데 서게 되면 자연스럽게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찾고자 하는 의지가 강할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그래서 주리고 목마름의 의미는 ‘강렬한 소원’이나 ‘갈망’을 의미하는 것이지요.
인간은 육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세상의 육적인 것들을 필요로 합니다. 의식주를 비롯한 돈과 명예, 권력도 필요합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은 우리에게 만족을 주지 못합니다. 다시 주리게 되고 목마르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누군가의 말처럼 욕망지향적 인생관을 가지고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세상 것에 대한 갈망’에서 ‘영적인 것의 갈망’으로 방향전환을 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라고 분명히 말씀합니다. 의의 본체이신 하나님께 우리는 집중해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무엇을 기뻐하시는지, 무엇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인지를 분별하고 그렇게 살아가려고 힘써야 하는 것이지요.
우리의 삶 속에서 자주 발견되는 신앙의 관습화를 주의해야 합니다. 이 정도면 되었다고 착각 속에 살아가는 모습들, 소위 라오디게아 교회의 안타까운 모습을 반복해서는 안 되는 것이지요. 조금만 더 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실텐데, 조금만 더 하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으로 살 것 같은데 하는 아쉬움이 우리에게 있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감사하게도 하나님은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에게 배부를 것이라는 놀라운 복을 약속해 주십니다. 영적 포만감을 주시겠다는 말씀을 주시는 것이지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의를 추구하며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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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lhap님의 댓글
jalhap 작성일아멘